몽마르트르 언덕을 추억하며 글을 써 본다.
몇 해 전 가족과 함께 몽마르트르 언덕을 방문했었다.
기대를 걸고 숨이 찰 정도의 많은 계단을 올라가니 최정상에 파리 사크레쾨르 성당이 있고 초대형 높이로 비잔틴풍의 교회가 보였다.
파리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고 관광객들은 셀카를 찍고 있었고, 젊은이들의 공연 무대가 펼쳐져 관광객을 환영하는 듯했다.
흔히 생각하기에 몽마르트르라 하면 자유롭고 화려한 예술의 거리이며 낭만의 거리, 예술이 숨 쉬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그곳의 역사는 가난과 압제가 심했던 차가운 땅 이었다고 한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한 끼의 식사를 위해 그림을 그리며 지냈고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했던 곳 이었다.
빈민가, 어둡고 죽음의 충동이 심했던 곳으로 지나간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시간속에 나름대로 예술의 멋이 풍기고 있었다.
실은 어둡고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예술은 가난과 슬픔을 먹고 태어나기도 하는구나~" 그리고 “'한' 이 있으면서 간절하게 소망하는 소원이 있구나"고 생각 된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양식을 달라고 외친 곳이다.
프랑스인에게 몽마르트르는 겨레끼리 피나게 싸웠던 곳이다.
누가 옳은지 그른지를 가지고 싸웠으며 사랑과 평화를 기원하던 곳이다.
실제로 몽마르트는 너무도 가난한 예술가들이 그곳에서 자기의 소리를 예술로 승화시켰으며 눈물 없이는 빵을 먹을 수 없던 곳이었다고 한다.
사크레쾨르 대성당 천장에 예수님의 성화가 있는데 양팔을 벌리고 모두를 포용하고 용서를 구하라는 메시지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랑과 평화를 기원하며 나의 죄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울려 퍼지는 듯하다. 그곳은 예술이 숨을 쉬며 동시에 인간의 품격이 숨을 쉬는 언덕, 평화를 향해 고뇌하던 젊은이, 가난한 예술가들이 한끼의 식사를 구하며 결핍을 예술로 승화시켰던 곳 이었다. 정의와 평화의 메시지를 그림과 상징으로 표현하며 새 날을 꿈꾸던 곳이다.
우리들의 정신세계는 가치나 의미를 향해 얼마나 힘차게 달려가고 있는지 질문하며 혼돈 속에 있는 젊은이, 절망하는 어른들이 다사다난했던 2020년을 떠나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결핍이나 상처는 인생을 왜곡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파라다이스를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에게 분열현상이 있어 현실화 되기는 어렵다. 특히 세계 역사를 보면 더 어려운 것 같다.
상처는 기억으로 남지만 용서는 해야 한다고 했다. 또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용서를 하라고... 상처는 마음속에 내사되어 무의식에 머물고 있다가 언젠가는 밖으로 투사 되어 나온다.
용서해야 내가 자유로울 수 있다.
새 해에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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